마틴 루터 킹이 코카-콜라에 편지를 보낸 이유는?

2017. 10. 31

 

“이번 행사만큼 저를 감동시킨 사건은 없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전 세대의 갈등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1965년 3월 15일, 편지 한 통이 코카-콜라에 도착했다.

발신자는 다름 아닌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목사.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63년 노예해방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워싱턴 평화행진에서 ‘I have a dream(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이라는 명연설을 남긴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연설문에서 킹 목사는 그의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흑인 해방 운동의 지도자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그가 코카-콜라에 편지를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그와 코카-콜라 사이에는 아주 깊고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와 코카-콜라는 고향 친구?

킹 목사와 코카-콜라는 소위 ‘고향 친구’다. 코카-콜라가 탄생한 애틀랜타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킹 목사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보스턴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침례교회 목사로 취임하게 되는데, 당시 몽고메리는 버스에서 백인과 흑인의 좌석이 따로 구분되어 있을 만큼 미국 남부에서도 인종 차별이 가장 심한 도시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흑인 여성이 버스에서 백인 남성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백인용 좌석이 모자라면, 흑인이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킹 목사는 이에 대항해 흑인 5만 명과 함께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을 벌였고, 버스 내 인종 분리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얻는데 성공한다. 이를 계기로 킹 목사는 미국 각지에서 흑인 인권 운동을 주도하며, 인종 차별 철폐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4년, 35살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후 애틀랜타의 몇몇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킹 목사의 업적을 기리고, 도시 내 분열된 집단을 한 데로 모으기 위해 다양한 인종과 종교를 아우르는 저녁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당시 애틀랜타 시장이었던 아이반 앨렌 주니어(Ivan Allen, Jr.)는 이 모임을 주목받는 행사로 만들기 위해 애틀랜타의 영향력 있는 기업가들에게 참석을 요청했지만, 거의 대부분이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코카-콜라와 마틴 루터 킹의 인연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애틀랜타와 미국의 역사적 순간을 만들다

당시 코카-콜라 회장이었던 폴 오스틴(J. Paul Austin)은 인종 차별이 국가에 심각한 혼란을 야기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원치 않았던 그는 최악의 경우 회사 본부를 애틀랜타가 아닌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있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

 

“노벨 평화상을 기리는 것에 반대하는 도시에 코카-콜라가 위치해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코카-콜라는 국제적인 기업입니다. 코카-콜라는 애틀랜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애틀랜타에 코카-콜라가 필요한 지 결정해주십시오.”

 

애틀랜타 비즈니스 업계에서 코카-콜라가 가진 위상과 영향력은 매우 컸기에, 오스틴 회장의 발언은 파급력이 매우 컸다. 순식간에 저녁 모임에 참석하겠다는 기업가들이 몰려들었으니 말이다. 

마침내 1965년 1월 27일, 1,500명에 달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대부분이 자신과 반대되는 인종과 함께 밥을 먹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 행사를 두고 수많은 신문에서 “백인과 흑인이 같이 앉아서 밥을 먹고, 그 순간을 함께 즐겼다. 이것은 애틀랜타에게 매우 영광스러운 순간이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킹 목사가 에드가 포리오(Edgar Forio) 당시 코카-콜라 선임 부회장에게 보낸 감사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마틴 루터 킹이 코카-콜라에 보낸 편지 ⓒHannah Nemer)

 

“이번 행사만큼 저를 감동시킨 사건은 없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애틀랜타를 비롯한 모든 남부지역, 나아가 미국이라는 나라에 기념비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행사를 통해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전 세대의 갈등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또한 민주주의의 원칙과 유대-기독교적 유산 속에서 모두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회를 경험하게 된 것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코카-콜라, 애틀랜타와 마틴 루터 킹을 기억하다

코카-콜라가 애틀랜타나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관련한 일에 나선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되던 날, 장례식에 드는 추가 비용과 전국적으로 일어날 시위와 혼란 등에 대비해 애틀랜타의 안전을 지키는데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애틀랜타 시장에게 말하기도 했다.

그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당시를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코카-콜라는 애틀랜타가 아주 어려운 순간에 지도자 역할을 했어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여기 존재하고 있죠.”

 

* 2017년 1월, 코카-콜라는 킹 목사와의 오랜 인연과 그의 노벨 평화상을 기념하기 위해 전시회를 열었다.

코카-콜라 기록보관소, 애틀랜타 대학센터(Atlanta University Center), 에모리 대학교(Emory University)가 공동으로 기획한 컬렉션에는 1964년과 1965년에 일어난 획기적인 사건들을 기록한 사진, 편지, 신문 스크랩 등을 비롯해 코카-콜라와 관련된 킹 목사의 다양한 자료들이 공개됐다.

아래는 당시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노벨평화상을 기리며)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마틴 루터 킹)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업적을 기리는 저녁 모임 초대장)

 

(저녁 모임 이후 언론에 보도된 기사 (1965년 1월 29일 자 신문))

 

(마틴 루터 킹은 전 세계인들의 가슴 속에 언제까지고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