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센트, 퇴사 준비생의 음료! 코카-콜라에 들어가다?
2019. 11. 04
“우리 직장은 때려치우고 같이 장사나 할까?”
늦은 밤, 맥주집에 가면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그 날의 세 친구들의 대화 주제 역시 ‘퇴사’였다.
그들은 맥주와 피자를 먹으며 사업 아이템을 생각해본다. 그들이 꼽은 것은 ‘음료’다. 카페도 술집도 아닌 스무디 주스. 그런데 주정뱅이들이 계획하기에는 너무 건강한 사업 아이템 아니야?
마시즘의 이야기냐고? 아니다. 영국의 과일음료 브랜드 ‘이노센트(innocent)’를 창업한 3명의 친구 이야기다. 재미 삼아 시작한 주스는 나중에 코카-콜라 산하에 들어갈 정도로 성장했다.
이쯤 되면 모든 퇴사 준비생의 롤모델 아닌가? 하하, 하지만 창업은 실전이라고. 오늘은 창업부터 인수까지 이노센트의 성장 이야기다.
대학 친구 3명
퇴사를 건 시음회를 하다
1998년 그 날의 술자리로 돌아가 출석체크를 해보자. 리처드 리드(Richard Reed), 아담 발론(Adam Balon), 존 라이트(Jon Wright)는 캠브리지 대학 친구다. 26살의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각각 런던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 만나면 피자나 맥주를 먹으면서 인생 2막을 계획하는 일을 했다. 그들은 숙취 속에서 아이디어를 하나 냈다.
과일 스무디를 파는 건 어때?
그들은 틈틈이 사업을 진행했다. 6개월 뒤에는 파인애플, 망고, 바나나로 스무디를 만들 정도가 되었다. 이제 테스트다. 그들은 과일 500파운드를 사서 런던의 한 ‘재즈축제(Jazz on the Green)’에 갔다. 그곳에서 포장마차를 열어서 사업이 괜찮을지 시험해보는 것이다.
(이후로 이노센트는 공원에서 음악축제들을 연다 ⓒinnocent drink)
애초에 준비한 것은 시음 후에 설문조사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날씨도 좋고, 음악도 좋은 재즈 페스티벌에서 3페이지짜리 설문지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쓰레기통을 2개를 두고 빈병으로 투표를 하게 만들었다. 질문은 심플했다.
‘저희가 스무디를 만들기 위해 직장을 그만둬야 할까요?’
쓰레기통은 주말이 지나 회수되었다. ‘Yes’에 병이 가득 차 있었다. 좋았어 바로 퇴사 후 창업이다!… 라기에는 쫄렸던(?) 것이 사실. 세 친구는 동전 던지기를 3번은 한 후에 사표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시작된다. 위대한 스무디 주스 브랜드! ‘패스트 트랙터(Fast Tractor)’의 전설이…
(잠깐만… 원래 이름이 이노센트가 아니라 고속 경운기라고?!, ⓒinnocent drink)
창업은 실전이야
애송이들아
우리의 이노센트… 아니 패스트 트랙터는 잘 되었을까? 아니었다. 사실 세 친구들은 식품 관련 회사에서 일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저 스무디를 만들고, 포장만 할 줄 알면 3~4주 안에 제품을 출시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9개월 동안 가진 돈을 모두 써버렸다.
은행에서는 20번 거절당했고, 벤처 캐피털에서는 5점 만점에 0점을 받았다. 직급도 없는 친구관계였고, 사업을 해본 적도 없고, 음료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구구절절 팩트 폭력. 그들이 투자자를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아는 사람 모두에게 ‘부자를 알고 있냐?’라고 메일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던 창업기는 이노센트 홈페이지에 귀엽게 등록되어 있다, ⓒinnocent drink)
그런데 답장이 왔다. 존 라이트의 옛 친구가 모리스 핀토(Maurice Pinto)라는 미국인 투자자를 소개해준 것이다. 모리스 핀토는 이들의 계획은 멍청하다고 생각했지만, 팀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는 25만 파운드를 지원해주었다. 또한 마이크 로드(Mike Lord)라는 주스 사업가를 만나 제품 제작과 유통 프로세스를 도움받을 수 있었다.
잔망스러운 과일음료 브랜드
이노센트 출격한다
(이노센트 하면 생각나는, 잔디밴, ⓒinnocent drink)
이제 겨우 상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세 친구는 상호도 패스트 트랙터에서 이노센트로 바꿨다. 업계의 초짜였기 때문에 대응하는 법은 간단했다. 다른 회사랑 다르게 한다. 단순하게 한다. 풀어서 말하자면 ‘원가절감이고 유통이고 모르니까 그냥 신선한 과일을 구해 스무디나 만들자’랄까.
그들은 판매용 밴의 외관에 잔디를 깐 것으로 유명했다. 시장이나 공원, 축제 등에 벤을 주차하고 스무디 음료를 판매했다. 잔디가 포인트라 그런지 사무실 바닥도 카펫 대신 인조잔디를 깔았다. 회사 전화기에도 잔디를 깔았다. 잠깐만 너무 이상하잖아.
친구들과 대화에서 장난을 하듯, 소비자들에게도 잔망스럽게 다가가는 것이 이노센트의 전략… 아니 생존방법이었다. 작은 브랜드였기 때문에 대대적으로 마케팅을 할 수는 없었고, 발품을 팔아 제품을 판매하는 것. 그리고 작은 재미요소를 제품에 하나씩 껴넣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잔망스러움이 빛을 보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디자인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천사링만 그리면 이노센트가 된다, ⓒinnocent drink)
이노센트 음료의 장점은 무엇일까. 신선한 재료로 만든 맛있는 스무디? 아니다. 사는 사람에게 재미를 느끼게 하는 요소들이다. 로고부터 봐라. 세상 이렇게 성의 없는 로고는… 디자인 업체와 미팅에서 ‘후광이 있는 표정’을 그려달라는 주문에 그려준 스케치를 그대로 썼다. 덕분에 이런저런 변형이 가능했다.
(바닥 봐서 미안, ⓒinnocent drink)
음료 바닥에 메시지를 쓰는 것은 돈이 없어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뭔가 바닥에 글씨가 쓰여있으면 사람들이 보고 기억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공모전을 열었고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 그 뒤로 이노센트 음료의 병 바닥에는 ‘구조를 원한다면 : 편지를 이 병에 넣고 바다에 던지세요’나 ‘제 바닥 좀 그만 쳐다보세요’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나도 갖고 싶다, ⓒinnocent drink)
가장 멋진 것은 ‘빅 니트(Big Knit)’ 프로젝트였다. 음료의 병뚜껑에 작은 털모자를 씌운 것이다. 이것은 고객들이 직접 뜨개질을 해서 만들어준 것이다.
겨울 동안 모자를 쓴 이노센트 음료를 구매하면, 노인들을 위해 25펜스를 기부한다. 그렇게 190만 파운드를 모금했다. 매년 겨울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을 위한 봉사와 함께 겨울철 잘 팔리지 않는 과일음료 판매량도 늘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런 잔망스러운 이벤트들이 매년 꾸준히 진행된다는 것도 그 어떤 마케팅보다 효과가 강했다. 뜨개질로 만든 병 모자는 이제 명예의 전당을 세울만큼 많아졌다. 듣보잡에 불과했던 이노센트는 어느덧 유럽에서 인기 있는 음료 브랜드가 되었다.
윤리척 책임과
경제 위기 사이에서
(단순히 직원이 아닌 고객들과 함께 워크숍을 하는 이노센트, ⓒinnocent drink)
장난스럽고 작은 이벤트를 벌이는 것 같지만 이노센트는 그야말로 윤리적인 브랜드 중에 하나다. 재미로 관심을 가졌다가 곧 그들이 매년 이익의 10%를 자선단체에 기부한다는 사실을 알면 매력에서 빠져나올 구멍이 없어진다. 무려 15년 동안 그들은 글로벌 기아 방지, 영양실조 개선 등을 위해 재단을 만들고 기부를 했다.
하지만 잘 나가는 음료 브랜드에도 위기가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가 닥치자 3개월 만에 제품 판매량이 1/3로 떨어진 것이다. 성장만 하던 이노센트에는 큰 충격이었고, 직원들을 많이 떠나보내야 했다.
그 사이 코카-콜라의 손길이 왔다. 이노센트의 지분을 점차 산 것이다. 이노센트라는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반발감이 거대했다. 가장 큰 반대의 이유는 바로 10%. 코카-콜라가 이노센트 이익의 10%를 과연 기부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하지만 코카-콜라 역시 그런 이노센트의 브랜드 메시지를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코카-콜라 같은 브랜드야 말로 음료의 품질뿐만 아니라 브랜드 스토리를 함께 하고 싶어 한다. 보다 건강하거나, 보다 윤리적이거나. 이노센트는 이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브랜드였고, 그렇게 코카-콜라 산하에 들어오게 된다.
세 친구의 다음 꿈
더 많은 이노센트를 위하여
(이제는 거물이 되어버린 세 친구, ⓒinnocent drink)
이노센트가 코카-콜라에 인수된 후, 3명의 친구는 자체 투자회사를 만들어 자신들과 비슷한 창업자들에게 투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친구들 없이 혼자 창업을 했다면 많은 위기를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고한다. 사회에 더욱 많은 이노센트를 만들겠다는 그들의 꿈은 성공할 수 있을까?
…라고 말한 사이에 이노센트가
마시즘에 왔다
(마 이것이 한국의 풀밭이다!)
항상 쓰고 싶었던 이야기였는데, 이노센트 스무디가 마시즘의 손에 들어왔다(코카-콜라에 인수되길 잘했어!). 이 잔망스러운 로고. 보자마자 잔디에 눕히고 싶은 디자인.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했던 맛. 그것은… 분량 실패로 곧 리뷰로 만나요.
참고문헌
- innocentdrinks Blog
- How Innocent bottled fame and fortune, Andrew Saunders, Management today
- Innocent co-founder: ‘everyone told us it wouldn’t work, Emma Featherstone, The guardian
- 15 Things Hardly Anyone Knows About Innocent Smoothies, Lara O’Reilly, Businessinsider
- How smoothie brand Innocent became a bestseller, Will Smale, BBC
- Building England’s Ethical, Healthy, and Slightly Cheeky Beverage Brand,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