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 비긴즈, 그 첫 번째 모습이 궁금하다면?

2023. 12. 27

“한때는 하루에 5잔 팔리던 음료가 1초에 2만 잔이 넘게 팔린다고?”

'애정하는 것'들은 과거에도 현재도 언제나 그 모습이었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좋아하는 것들의 과거를 들춰보며 반전된 매력을 느끼곤 한다. 이를테면 가정집 창고에서 시작한 세계적인 회사의 초창기 모습이라거나, 젊은 시절 부모님의 결혼사진, 또 책장에 봉인된 나의 학교 졸업앨범을 펼쳤을 때 같은 경험 말이다. 아니 이게 나라고?

이것은 마시는 세계에서도 똑같다. 1초에 2만 잔 이상이 팔리고, 세계 200여 개국에서 팔리는 코카-콜라의 첫 모습이 '동네의 이름 모를 음료'였다면 당신은 믿을 수 있을까? 

누구보다 코-크를 애정하고 있는 자타공인(?) 코카-콜라 추적자이자 오프너(Opener)* 마시즘. 오늘은 우리가 만나보지 못한 코카-콜라 음료들의 첫 모습을 만나본다. 

그런데 시작부터 놀랍다.

“그 코카-콜라가 사실은 ‘와인’이 될 뻔했거든요.”
 

※ 오프너(Opener)는 코카-콜라 저니와 함께 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의 모임입니다. ‘마시즘(http://masism.kr)’은 국내 유일의 음료 전문 미디어로, 전 세계 200여 개국에 판매되고 있는 코카-콜라의 다양한 음료 브랜드를 리뷰합니다. 코카-콜라 저니에서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받았습니다.

 

코카-콜라의 초기 버전은 ‘와인’?

(세계 최고의 술?을 만들 뻔한 존 펨버턴 박사)
 

코카-콜라를 만든 사람은 '존 펨버턴(John Pemberton)' 박사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약사로 일하는 그는 이런저런 약재를 배합하며 맛있는 음료를 만들었다. 그렇게 나온 음료가 바로 코카-콜라... 가 아니고 처음에는 알콜이 들어간 음료였다. 

이름은 '펨버턴의 프렌치 와인 코카(Pemberton’s French Wine Coca)'다. 

하지만 이 음료는 결국 수정에 들어갔다. 와인을 없애고, 탄산이 있는 '소다수'를 섞어 마시는 음료로 만들기로 하였다. 또 콜라 열매를 추가해서 달콤하면서도 짜릿한 맛을 살렸다. 존 펨버턴의 회계사였던 프랭크 메이슨 로빈슨(Frank Mason Robinson)은 이 음료에 이름을 지어주었다. 

코카-콜라(Coca‑Cola). 전설의 탄생이었다.

와인에서 음료로 바꾼 존 펨버턴 박사의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향후 미국 전역에 '금주법(1919년 ~ 1933년)'이 시행되며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게 불법이 되었거든.
 

코카-콜라 병은 처음에 ‘직선’이었다?

(코카-콜라가 이런 병에 담겼다고?)

존 펨버턴 박사가 만든 코카-콜라는 아사 캔들러(Asa Candler)를 만나 꽃을 피우게 된다. 마케팅과 브랜딩의 천재였던 그는 '애틀랜타 명물'이었던 코카-콜라를 미국 최고의 음료로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동시에 문제도 생겼다. 너무나도 많은 음료회사가 코카-콜라를 따라 하기 시작한 것.

물론 지금까지도 비밀에 부쳐진 코카-콜라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코카-콜라의 병모양만 따라 하는 것으로도 소비자들은 잘못된 선택을 하곤 했다. 코카-콜라 병은 초기에는 원통형 모양의 허치슨 보틀(Hutchison Bottle)에 담겼고, 이후에는 평범한 음료병에 라벨을 붙였다.

그랬더니 라벨만 따라 하면 코카-콜라를 따라 할 수 있었다. 코카-놀라, 토카-콜라... 마 코카-코 이런 제품들이 양산되었다. 코카-콜라의 C를 K로 바꾼 제품까지도 나왔다.

아사 캔들러는 일생일대의 결정을 한다. 1915년 상금을 걸고 '코카-콜라 병' 디자인 대회를 연 것이다. 어두컴컴한 곳에서도 코카-콜라를 구별할 수 있도록 상징적이고 독창적인 디자인을 주문했다. 

그렇게 나온 것이 코카-콜라를 상징하는 병 '컨투어 보틀(Contour Bottle)'이다. 컨투어 보틀은 코카-콜라의 맛만큼이나 코-크를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코카-콜라가 없어서 만들어진 ‘환타(FANTA)’?

(일찍이 올림픽과 함께 한 코카-콜라)

코카-콜라는 이후 로버트 우드러프(Robert W. Woodruff)를 만나 한 차원 더 진화한다. 192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올림픽에 코카-콜라를 후원하면서, 미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코카-콜라가 사랑받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코카-콜라는 몇몇 나라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중에 한 나라가 '독일'이었다. 하루아침에 코카-콜라를 잃어버린 독일은 비슷한 음료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코카-콜라의 레시피를 알아낼 수 없었다. 

(코카-콜라에 대한 그리움으로 만든 ‘환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환타(FANTA)'였다. 전쟁 중 여러 가지 남는 재료들을 이용해서 탄산음료를 만들어 냈다. 당시에는 환타 색 또한 지금과 다르게 코카-콜라와 같은 색이었다. 그렇게 환타는 당시 독일 노동자들을 비롯하여 국민들에게 사랑받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음료를 코카-콜라가 인수하고 재출시하게 되었다. 코카-콜라에 대한 그리움으로 만든 음료가 아닌 코카-콜라의 동료로 환타가 다시 태어난 것이다.

제 이름은 ‘스프라이트’ 원래는 환타입니다

(독일에서 환타였던 내가 ‘스프라이트’가 된 사연?)

환타의 매력은 다양함에 있다. 시기별로 나라별로 다른 환타의 맛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독립(?)을 하게 된 환타 맛도 있다. 바로 1959년 독일에서 개발된 '클리어 레몬 환타(Clear Lemon Fanta)'였다. 투명한 색상에 레몬의 새콤함을 담은 이 음료는 미국으로 건너가 '스프라이트(Sprite)'가 되었다. 

(원래는 코카-콜라의 캐릭터 ‘스프라이트’)

이전까지 스프라이트는 코카-콜라 광고에 등장하는 '요정'이었다. 하지만 이 이름이 투명한 레몬 라임 탄산음료를 만나 큰 인기를 얻었다. 스프라이트의 시작이 환타였다는 걸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사람에게도 음료에게도 있는 풋풋한 첫 모습

코카-콜라, 환타, 스프라이트 모두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음료다. 언제나 맛있고, 하는 것마다 매력적이고, 멋진 이 음료들도 어설프면서도 풋풋했던 '첫 모습'이 존재한다. 시작은 소소했어도 더 맛있는 경험을 위해 열심히 한 모습들이 지금의 코카-콜라를 만들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감흥을 준다. 아직은 모자라더라도 더 짜릿한 미래를 꿈꾸는 우리의 갈증에 필요한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잔의 코카-콜라 그리고 이 음료에 담긴 이야기가 아닐까?

번외 : 닥터페퍼의 첫 모습, 닥터페퍼를 만든 사람은 닥터페퍼가 아니야

(선생님이 닥터페퍼를 만든 페퍼씨 입니까? “누.. 누구요?”)

코카-콜라의 3대장(?)과는 다르지만 '닥터페퍼(Dr Pepper)'는 매니아들의 독보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닥터페퍼의 첫 모습은 의외의 혼돈을 일으킨다. 이 음료의 이름은 '웨이코'였다. 만든 사람의 이름도 '페퍼'가 아니라 '찰스 앨더튼(Charles Alderton)'이라는 약사였다. 대체 '닥터페퍼'란 이름은 왜 지은 것일까? 140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